닉네임이 “욤봄”인, 매우 열심인 땅게로가 있습니다. 이분은 매주 대여섯번 쁘락이나 밀롱가를 가고 엘불린 수업을 포함해서 여러 쌤들로부터 땅고 수업을 듣죠. 수업시간에 보면 욤봄님은 수업내용을 이해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하고 열심히 따라하고 질문도 많이 합니다.

욤봄님과 저는 채팅으로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보통 욤봄님이 땅고에 관한 질문을 하고 저는 최선을 다해서 대답을 하려고 하죠. 그의 질문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질문들에 대한 좋은 답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저에게는 꽤 즐거운 일입니다.

최근에 욤봄님과 나눴던 대화를 하나 공유해 보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두가지 개념에 대한 이야기이거든요:

1) 땅고를 배울 때 우리는 땅고추기의 올바른 방법 혹은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고 싶어하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훌륭한 댄서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훌륭하다.

2) 부분적으로 1) 의 이유 때문에, 또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땅고 자부심을 발전시키고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겸손한 태도로 모든 사람에게서 자신의 춤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욤봄님이 이 대화 내용을 공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대화는 좀 더 읽기 편하도록 약간의 편집과정을 거쳤습니다.

                                        

욤봄 : 오늘 어떤 땅게라가 그러는데, 오픈으로 출때는 “텐션”을 만들기 위해서 남자가 여자의 축을 향해서 양손으로 수평 방향으로 누르듯이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하네요.

그 땅게라는 땅고를 굉장히 오래 추셨고 이 텐션 만드는 방법을 열렬히 옹호하시는 분이세요. 최근에 어떤 수업에서 배우신 내용 같은데 주변 사람들에게 이 방식을 열심히 권유하고 계십니다.

이런 “텐션”이 모든 사람이 항상 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땅고추는 스타일 중에 하나일 뿐일까요?

헝얏 : 내 생각에는 어떻게 텐션을 만들지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 봅니다.

질문을 해봐야 해요: 텐션은 무엇 때문에 필요하지? 왜 두 사람 사이에 텐션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땅게로와 땅게라가 서로 신체적으로 떨어져서 했던 공연들이 있어요. 그들 사이에는 텐션이 없죠. 그런 공연이 뭐가 문제가 있나요?

욤봄 : 땅고 공연에서 오픈 아브라소인데 전혀 신체접촉이 없다고요? 그런 건 본적이 없는데요!

헝얏 : 그런 공연이 궁금하다면 여기 동영상 링크가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bB9QHVdMYNk

욤봄 : “텐션” 이라는 말은 아마도 한국 땅고 문화에서 가장 분열을 조장하는 말일지도 몰라요.

어떤 땅게라분들은 저와의 춤이 끝나고 나서 혹은 끝나기도 전에, 제가 충분한 텐션을 주지 않는다고 질책하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분들 입장에선 충분한 텐션을 주지 않는 땅게로와 추는 것이 너무 견딜수 없다보니, 상대방에게 그 사실을 지적해 주는게 차라리 상대방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텐션이 그렇게나 중요했던거죠. 그 땅게라 분들께는.

헝얏 : 밀롱가에서 이런 지적을 한다고요?

욤봄 : 음… 대개는 쁘락에서 그런 말씀들을 하시죠.

헝얏 : 그 라분들께 피드백을 요청했나요?

욤봄 : 대부분의 경우에는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지적을 받았어요.

헝얏 :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뜸 피드백을 줬다고요?

제 생각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지적질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결국 그 사람들은 욤봄님과 어떻게 춰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고, 그걸 지적질로 표현한다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죠.

욤봄 : 저는 지적질은 상관없어요. 제가 관심있는 것은, 그분들의 피드백이 과연 올바른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 그것 뿐입니다. 올바르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분들이 말한 내용이나 말하는 방식이, 스스로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이긴 했어요. 그렇지만 전 원래 혹독한 비판을 좋아합니다.

헝얏 : 그러나 지적질은 안 좋은 거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욤봄 : 전 단지 무엇이 옳은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상대가 지적질해도 괜찮아요.

헝얏 : 그건 아니죠. 특히 그런 지적질이 욤봄님의 춤을 향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됩니다.

욤봄 : 제 태도는 이겁니다: 배울수만 있다면 상대방이 말하는 방식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이 텐션에 대한 접근법에 동의하시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춤을 출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텐션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입니다.

헝얏 : 음 좋아요. 한번 해보죠.

제게 있어서 아브라소는 건축물과 같아요. 건물은 여러 방식으로 지을 수 있죠. 건물은 짚으로도, 진흙으로도, 강철로도 만들 수 있고요. 사용되는 재료나 건축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각 건물들은 겉모습 뿐만 아니라 구조가 유지되는 방식도 서로 다릅니다.

아브라소도 마찬가지예요. 땅게로들은 아브라소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들죠. 손을 어디에 놓느냐, 얼마만큼 어디에 텐션을 만드느냐 (아니면 텐션을 전혀 쓰지 않느냐), 가슴 접촉을 어디에 하느냐 등등… 그래서 아브라소들이 제각기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겁니다.

경험이 많은 땅게라들은 다양한 다른 아브라소 안에서 편안하게 있는 법을 잘 알아요. 그래서 그런 땅게라들은 다양한 땅게로들과도 즐겁게 출 수 있죠.

조금 경험이 많지 않은 땅게라들은 다른 종류의 아브라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이해력이 떨어져요. 어떤 땅게라들은 가슴 커넥션이 없으면 못 추죠. 팔에 텐션이 없으면 춤을 못추는 땅게라들도 있을 수 있고요.

건물을 짓는 방법이 딱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브라소를 만드는 방법도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텐션은 유용한 개념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텐션이 도대체 어떤 목적을 위함인지를 이해하는 거예요. 안정성을 위해서인지? 회전을 하기 위해서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을 수 있는 거죠. 어떤 특정한 방식을 써서 텐션을 만든다면, 뭔가 다른 것을 희생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아요.

훌륭한 땅게로들은 대부분의 땅게라들과 춤출 수 있고 그들이 목적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요. 땅게라가 그 땅게로의 방식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해도 말이죠.

훌륭한 땅게라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땅게로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이해하죠.

욤봄 : 즉 헝얏쌤 말은 텐션도 스타일이라는 거군요… 제 짧은 생각으로는 텐션을 만들면 뭔가 편안함을 희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헝얏 : 스타일이라기보다, 텐션은 도구입니다. 도구에는 여러가지가 있죠. 조화롭게 잘 작동하는 도구들을 모아 놓으면 그것이 스타일이죠. 또는, 사람들이 흔히들 함께 사용하는 도구들의 조합이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제가 보기에는 욤봄님이 최근에 물어보는 질문들은 욤봄님과 다른 도구들을 쓰는 땅게라들과 어떻게 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과 추는 것이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겠죠.

욤봄 : 저는 저와 추는 그 땅게라분들이 얼마나 불편할지 그게 더 걱정인데요.

헝얏 : 이야기가 다시 지적질을 부탁하는 것에 대한 주제로 돌아오네요.

상대방의 편안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스스로의 땅고에 좋지 않아요. 너무 배려심이 넘치는 것도 도움이 안됩니다. 상대방에게뿐만 아니라 욤봄님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돼요.

욤봄님이 상당히 배려심이 많은 사람인 것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배려심이 많다는 것이 땅고에 항상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욤봄 : 제가 하는 방식에 상대방에 맞춰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요?

헝얏 : 그게 욤봄님에게 손해인가요? 여러 땅게라가 욤봄님에게 각자 다른 것을 바란다면, 그 모든 땅게라를 어떻게 다 배려해 줄 수 있나요? 땅고에서는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욤봄님이 해야하는 일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열심히 갈고 닦은 다음에 그것을 가지고 최대한 많은 수의 땅게라들을 만족시키는 거죠. 모든 땅게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고 그들을 다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고요.

중요한 것은 욤봄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거죠. 한가지 방식으로 훌륭한 땅고를 출 수 있게 발전시키는 것조차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거든요.

욤봄 : “아이고, 아브라소에 텐션이 없으시네요” 라고 얘기하는 땅게라분들께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요?

헝얏 : 그건 사교적인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죠. 원래 아는 사람인지, 얼마나 공손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등등… 몇가지 가능한 답변을 생각해 보자면:

“먼저 물어보지 않은 이상 서로의 춤에 대한 지적은 사양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자리를 뜹니다.

“맞는 말씀이지만 제가 아직 그 정도 레벨이 못돼서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자리를 뜹니다.

“춤 추시길 원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말씀을 나누고 싶으신 건가요?”

그러나 제 생각에 최선의 방법은 상대방이 욤봄님이 물어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지적질을 해도 괜찮겠구나 라고 느끼는 여지를 만들지 않는 겁니다.

[시간이 흐른 뒤]

욤봄 : 헝얏쌤이 하신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최근의 대화를 몇번이고 다시 읽어봤어요. 고백컨데 마지막에 하신 말씀은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항상 비판에 열려있는 자세, 그리고 배려심에 관한 이야기 말씀입니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말하고 다니는 것이,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으니까 아무 비판이나 해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진심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제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 덕분에 저는 솔직한, 때로는 가혹한 비판을 받지만 저는 그게 좋아요. 그런 피드백을 이용해서 저의 땅고를 발전시키려고 계속 노력하죠. 성장하려면 빨리빨리 피드백을 받아서 수정을 하는 사이클이 필수적이잖아요.

전에 말씀하시길,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지적질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셨죠. 지적질 하는 태도는 물론 나쁜 것이지만,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냥 그런 피드백도 저에게 필요한 조언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고 그분들의 그런 태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헝얏 : 그런 방식은 기술적인 부분의 발전에는 좋지만, 땅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에요.

욤봄님이 연설가라고 해봅니다. 연설로 사람들을 설득하는게 욤봄님 일이예요.

욤봄님은 목소리 크기라든가 말하는 기법이라든가 몸의 자세라든가 내용의 전달 등등 많은 기술적인 부분을 훈련하겠죠. 이 모든 것들은 욤봄님이 더 나은 대중 연설가가 되기 위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욤봄님은 연설 끝에 항상 이렇게 말할 것은 아니잖아요? “자 제가 드릴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 저에게 어떤 피드백이든 아무거나 해 주세요. 전 굉장히 겸손하니,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고칠 것은 고쳐보겠습니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확신과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땅고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것들이 기술보다 더 중요합니다.

땅고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기술적인 것과 더불어 이런 것들을 개발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나 이런 것들은 항상 겸손한 자세로 모든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함으로 개발되는 것들이 아니죠.

뿐만 아니라 만약 모든 사람들이 욤봄님의 춤을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면 그 사람들이 춤을 출 때 욤봄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겁니다. 춤을 추는게 아니라 욤봄님 춤을 평가하려고 할 수도 있겠죠.

땅고라는 것은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그 자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땅고는 모든 사람의 각기 다른 요구사항에 일일이 맞춰주는 것이 아니에요.

욤봄 : 와… 그런 쪽으로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말씀해 주신 새로운 개념을 이해해 보도록 시간을 들여서 노력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헝얏 :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워요. 저는 저의 생각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