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땅고를 시작할 때 생각은 단순했다. 내 마음에 드는 선생님을 찾아서 배우는 것이었다. 선생님마다 춤을 다르게 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선생님의 학생들과 춤을 출 수 없을까봐 걱정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만약 내가 충분히 잘 추게 되면 누구와도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내가 배운 것이 “땅고 누에보” 라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가장 유행하던 춤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내 친구들은 다 같은걸 배웠었고, 우리 모두 만족했다.
내 행복은 몇 년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는 지루해졌다. 나는 다른 선생님을 찾았다. 그분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춤을 추었다. 그들의 가르침이 내가 전에 배운 것과 완전히 모순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것은 신선했고, 새로운 선생님이 가르치는 춤이 어떤 스타일인지 상관하지 않았고, 그들 역시 설명할 의도조차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 정부가 문디알 땅고(세계 땅고 챔피언십)을 시작했다. 그 대회에는 땅고 에세나리오(무대용 땅고)와 땅고 쌀론이라는 두 가지의 카테고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많은 땅고 쇼를 봤기 때문에 땅고 에세나리오가 무엇인지 알았지만, 땅고 쌀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이 용어는 그때까지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단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고 쌀론이 뭐지?”하고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또한 다른 땅고 스타일로는 무엇이 있는지, 이러한 스타일들은 어떻게 정의되는지 궁금해 했다.
몇 년 후, 문디알 대회는 이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카테고리 이름을 “땅고 데 라 삐스따 (플로어에서 추는 땅고, 무대용이 아닌 땅고)”로 바꾸었다. 나는 이 새로운 이름이 좀 거창하다고 생각했지만, 왜 변경해야 했는지 이해했다. 땅고는 규격에 맞춰 추는 춤이 아니다. 춤에 최고의 방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문디알 대회는 다양성과 개성을 원했고, 그러므로 모두를 망라하는 이름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나의 경우는 밀롱가에서 행복하게 춤을 추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땅고 스타일에 대한 질문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춤을 충분히 잘 추는 한, 내 춤에 어떤 꼬리표를 붙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땅고를 가르치기 시작하고 나서는 더 이상 그런 질문들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어떤 스타일의 땅고를 가르치나요?” 스타일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물론, 배우는 입장에서 궁금한 것을 질문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춤을 잘 추면 됐지, 스타일이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이 문제는 내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밀롱가에서 사람들이 내 학생들의 춤 스타일을 물었다. 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가끔 사람들은 그들 대신 단정지어 주곤 했다. “선생님이 누구예요? 아, 그분한테 배워요? 그럼 당신은 XXX 스타일이네요.”
나는 누군가가 나를 어떤 이름으로 단정 짓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불편했다. 남이 나를 단정지어 버리면 그것은 내 가능성과 발전을 제한한다. 그런 명칭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내가 추는 춤을 해석하는 데 제약을 만든다. 같은 이유로, 나는 내 학생들도 단정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그들 자신인 채로 자유롭게 춤을 추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결국, 땅고에서 스타일이란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이름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불변의 표준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위대한 댄서들은 다른 방식으로 춤을 추었고, 문디알의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스타일들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왜 사람들이 춤을 다르게 추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한 가지 기본적인 사실은 바로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의 크기 때문이다. 만약 플로어가 한산하면 사람들은 큰 스텝을 딛을 수 있다. 좀 더 복잡한 패턴들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새로운 스텝들로 확장해 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플로어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테이블에 앉아있는 이들이 사람들의 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춤을 추는 모양 역시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플로어가 사람들로 꽉 차 있으면 아브라소가 더 밀착될 것이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좀 더 단순한 스텝을 구사하게 되고, 제한된 동작들로만 여러 장르의 음악을 다양하게 표현하려고 하게 된다. 플로어가 복잡하기 때문에 한사람 한사람의 춤을 감상할 수가 없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모양보다는 아브라소와 스텝으로 파트너에게 전달하는 감각적인 느낌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이것은 실제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시내 외곽 지역 사람들의 춤은 공간이 넓기 때문에 복잡하고 창조적인 여러 스텝들과 우아함을 강조하게 되었다. 시내 중심가의 밀롱가는 훨씬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아브라소에서 오는 밀착감과 단순한 스텝들로 발전하게 되었다. 물론 그 중에는 예외도 있지만, 당시 양쪽 지역을 오고가는 교통이 지금처럼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만 춤을 추었다. 그러다보니 점차 춤을 추는 방식이 다르게 발전한다. 이것은 언어가 발전한 양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두 지역 간에 지리적 장벽이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두 가지 방언이 나타난다.
이제 어떤 사람들은 “에스띨로 밀롱게로(밀롱게로 스타일)”이란 단어를 사용해 시내 중심가에서 발전한 춤을 지칭하려 한다. 이 단어는 처음 수산나 밀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는 1990년에 미국에서 워크샵을 열면서 자신이 시내 중심가의 밀롱게로들과 춤추던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이름을 사용했다.
하지만 “밀롱게로” 라는 말은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이다. 이것은 밀롱가의 문화와 행동방식을 잘 이해하고, 밀롱가를 즐겨 다니며, 그들의 삶의 중심에 밀롱가가 포함된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밀롱게로의 정체성은 춤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시내 중심가와 시내 외곽 양쪽 모두에 밀롱게로가 존재하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춤을 춘다. 밀롱게로 스타일이란 말이 듣기에는 보편적이고 매력적인 용어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에스띨로 델 센트로 (시내 중심가 스타일)이나 땅고 아필라도 (아필라도는 몸을 딱 붙이는 방식의 아브라소를 뜻함) 라고 부르는 것이 수산나 밀러가 가르치던 춤에 더 맞는 용어일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여러 교외 지역이 있다. 비자 우르끼사는 몇 년 전에 크게 주목을 받았었다. 그 지역에서는 여러 중요한 댄서들을 배출하였고, 유명 밀롱가 순덜랜드도 있었다. 그리고 “비자 우르끼사 스타일”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을 했었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 있는 댄서들이 비록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긴 해도, 그들의 독특한 정체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다. 모든 유명 댄서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텝을 창조해 냈고, 서로를 따라하는 것은 빈축을 사는 일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그들의 춤이 “비자 우르끼사 스타일”로 춤추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도 그들 자신만의 스타일로 춤춘다고 대답할 것이다. “비자 우르끼사 스타일”이라는 말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지만, 댄서들 스스로가 원하는 명칭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완전히 다른 땅고 세상에서 살고 있다. 교통이 편리해졌기 때문에 (펜데믹 이전에는) 춤을 추기 위해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다른 공간, 다른 댄서들, 다른 춤의 방식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 또한 더 다양한 선생님들에게 땅고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동영상과 인터넷 정보가 넘쳐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에 각자 다른 개성으로 춤을 췄던 옛 밀롱게로들의 관점으로 보면 최근 들어, 오히려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식으로 춤을 춘다.
춤의 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발전했는지 이해하는 것은 가치가 있지만, 춤 스타일의 구분에 집착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우리의 호기심과 열정을 춤의 발전에 쏟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러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배우고, 우리의 배움의 지평을 넓히자. 우리에게 유용하고 취향에 맞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이 글을 2018년에 처음 페이스북에서 올렸다. 이후 학생들에게 땅고 스타일에 관한 더 많은 질문을 받고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