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뭐가 이렇게 까칠하죠? 여러 밀롱가를 다녀봤지만 여기처럼 폐쇄적인 곳은 처음 봐요. 외부에서 온 사람은 아예 쳐다도 안보나 봐요?”
그의 다소 격앙된 목소리에 내가 대답했다.
“아는 사람이 없으면 처음엔 좀 힘들 수도 있어요.”
“몇 명 있어요. 그 사람들하고는 이미 두 딴다씩 췄어요. 그래도 다른 곳은 처음 온 사람도 환영해 주는 분위기인데 여긴 전혀 그런 게 없나 봐요. 그렇다고 춤 실력이 더 높은 것도 아니고, 정말 어이가 없네요. 내가 여기서 춤을 춰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요.”
결국 그는 밀롱가를 나가 버렸다. 그가 푸념을 한 이 밀롱가의 악명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언젠가는 아르헨티나 사람이 이곳에 와서 두 시간동안 앉아만 있다가 그냥 나가버린 적도 있다. 그와는 전에 다른 곳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꽤 춤을 잘 추는 할아버지였다. 내가 밀롱가에 도착했을 때 그는 밀롱가를 떠나는 참이었다. 한 사람도 그와 첫 곡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춤을 잘 춘다는 걸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사실 처음 본 사람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곳이라 이런 경우가 빈번하다. 그럼 이 밀롱가는 정말 그렇게 폐쇄적인 것일까?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면서 스스로 수준이 다르다고 콧대를 높이고 있는 것일까?
외국인이, 특히 동양인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가면 비슷한 경우를 겪곤 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꽤 춤을 잘 춘다는 평판을 얻고 있기 때문에 덜할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밀롱가에 아는 로컬 친구가 있지 않은 이상, 혼자 밀롱가를 갔다가는 춤을 출 기회를 갖기가 쉽지 않았다. 여자의 경우는 그래도 가끔 동양인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남자들이 춤을 청하기도 했지만 남자의 경우는 더 힘들었다. 춤 잘 추고 인기 있는 댄서들은 거의 아시아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르헨티나 사람인 줄 알고 까베세오를 했는데 춤을 춰 보니 유럽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외국인들끼리만 춤을 추곤 했었다. 이 벽을 깨는 데는 몇 주가 걸린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동양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일까? 그들의 성향은 대체로 폐쇄적인 걸까?
미국에 사는 한국인 지인이 있다. 그가 2008년에 처음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방문 했을 때, 첫 밀롱가로 까치룰로를 갔다. 그리고 여섯 시간 동안 단 한 곡도 춤을 추지 못했다. 그 당시만 해도 아르헨티나의 밀롱가 문화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까베세오가 뭔지 몰랐던 그는 몇 번 가서 춤을 청하고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그는 실망해서 욕을 하고 나가는 대신 자리에 앉아서 관찰을 했다. 단지 사람들의 춤을 추는 모습만 본 게 아니라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춤을 청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열심히 봤다. 그리고 여섯 시간 후에 비로소 한 아르헨티나 여성에게 완벽한 까베세오를 했고 첫 딴다를 추었다.
한 지역의 밀롱가는 한 커뮤니티와도 같다. 매주 거의 비슷한 사람들이 오다보니 이웃 주민처럼 서로 익숙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들만의 코드가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가 한 밀롱가에 진입하려면 그 밀롱가의 코드를 알아야 한다.
어떤 밀롱가는 춤을 최대한 많이 추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모인다. 이런 밀롱가의 코드는 단순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섞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떤 밀롱가는 춤 출 상대를 주의 깊게 고르는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다. 이런 밀롱가는 코드 역시 까다롭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들의 코드를 이해한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게다가 하룻밤에 함께 춤을 출 상대가 이미 충분하다면 새로운 사람에게 눈을 돌릴 확률은 지극히 낮다.
어떤 밀롱가는 가족이나 애인, 친구들끼리만 춤을 추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런 경우 장소는 서로 공유하는 곳일 뿐이기 때문에 다른 그룹의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다. 이런 밀롱가는 섣불리 혼자 방문했다가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수도 있다.
어느 밀롱가든지 그 안에 이미 속한 친구가 있으면 적응하기가 훨씬 빠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방문한 밀롱가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파악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만약 그 밀롱가의 코드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해가 될 때까지 그 밀롱가를 방문해서 관찰을 하고 익혀나가면 된다. 아니면 지금 내가 이해하기 쉬운 코드를 가지고 있는 밀롱가를 가면 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구분이 생겨나는 것일까?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많이 추면 좋은 것 아닌가? 한 밀롱가에서 다 함께 섞일 수는 없는 것인가? 물론 그런 밀롱가도 존재하지만, 한 지역의 땅고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 땅고를 오래 출수록 폐쇄적이 되어서가 아니라, 좀 더 합리적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입맛이나 성격이 다르듯이 춤을 추는 성향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삼겹살을 사랑하지만 어떤 사람은 몸에서 거부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즐기지만 어떤 사람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떤 사람은 누구하고나 춤을 출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이 허락한 소수의 사람하고만 출 수 있다. 그 사람이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타고 나서 그렇다.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그들의 성향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밀롱가의 레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춤 실력의 레벨이 아니다. 춤을 레벨로 따지는 것도 위험하지만, 밀롱가를 말할 때도 단순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춤 실력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레벨이란 진입 장벽에 대한 난이도이다. 어떤 밀롱가는 그 안에 섞이기가 쉽고 어떤 밀롱가는 그 안에 결속된 사람들 안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걸 뜻한다. 이것 역시 좋고 나쁨으로 구별할 수 없다. 단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문제이다.
재미있는 점은 춤을 추다 보면 본인이 가고 싶은 밀롱가가 바뀐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밀롱가가 편하고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밀롱가가 더 좋아지게 된다. 이건 밀롱가가 변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변화해서 그렇다. 좋아하는 오케스트라가 자꾸 바뀌는 것처럼 이 취향도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누가 어느 밀롱가에 가느냐를 가지고 그 사람의 수준을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 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땅고 여정이 있듯이 각자의 밀롱가 여정이 있다. 이 길에 정답이란 없다. 더 옳고 나쁜 길도 없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나라에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오거나이저들이 각기 성격이 다른 밀롱가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